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찬송가 407 (통 465)
1)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구주와 함께 나 살았도다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2) 맘 속에 시험을 받을 때와 무거운 근심이 있을 때에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도와 주시네
3) 뼈아픈 눈물을 흘릴 때와 쓰라린 맘으로 탄식할 때 주께서 그 때도 같이 하사 언제나 나를 생각 하시네
4) 내 몸의 약함을 아시는 주 못 고칠 질병이 아주 없네 괴로운 날이 나 기쁜 때나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네
후렴) 언제나 주는 날 사랑하사 언제나 새 생명 주시나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말 씀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누가복음 19:30-35]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곳에 임합니다. 타락한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었습니다. 타락한 성전, 마치 그곳은 강도의 굴혈과도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로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존재감이 있는 곳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이 어떤 곳인지, 친히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그분의 사역 안에서 가장 하이라이트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지극히 ‘겸손’의 모습을 입으셨습니다. 바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것입니다. 나귀는 겸손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는 겸손의 옷을 입고 있는 자에게 충만히 부어집니다. 나귀가 되는 순간 자유가 임합니다. 나귀가 되는 순간 기쁨이 임합니다. 나귀가 되는 순간 걱정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고삐를 우리 주님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치는 우리 등에 탄 예수님에 의해 결정되어 집니다. 내 능력과 권위는 내가 애써 만든 것이 아니라 내 등에 타신 주인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힘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는 겸손의 옷을 입고 있는 자에게 충만히 부어집니다.
좋으신 하나님, 당신의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가 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가 당신의 이끄심 안에 만났다는 사실을 평생에 잊지 않게 하시며 항상 당신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아가는 믿음의 가정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또한 특별히 믿음의 여정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나아가는 가정 되게 하시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기쁨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옵소서.
좋으신 하나님, 사랑하는(000)를 우리 가정에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은 사랑하는(000)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깊이 깨달아 알게 하시옵소서. 어떤 피조물도 목적 없이 의미 없이 지어진 것이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움직인다는 것을 사랑하는(000)가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이 자신을 부르신 목적과 부르심을 깊이 깨달아 아는 사랑하는(000)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좋으신 하나님, 사랑하는(000)를 당신의 날개 아래 품으시고 지금까지 이끌어 오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시간 기도하는 것은 사랑하는(000)를 통해 예수의 형상이 이 땅에 온전히 비추어지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000)안에 정결한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 창조되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000)가 하나님의 말씀 묵상하는 것을 날마다 즐거워 할 수 있게 하시고, 또한 당신께서 사랑하는(000)를 향한 본래의 형상대로 사랑하는(000)가 빚어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